얘야 너 기억나니?
그날도 학원을 마치고 밤 12시 가까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너에게 이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니? 세상이 너희들에게 너무 가혹하구나.” 라고 했더니 네가 했던 말.
“아니에요, 아빠, 고3은 우리 시대의 성인의식인 걸요” 했던 말 말이다.
그래, 그때 네 말은 참 대견스러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것도 훌륭한 성인이 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수월한 일이겠니. 요즘도 너희들 사이에서 데미안을 얘기하면서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 없이 성숙은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존 강의 어느 부족은 성인이 되려면 독개미들을 장갑 속에 넣어 손을 물게 하여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고 한다. 또 어느 인디언 부락에서는 짐승과 뱀이 우글거리는 정글 속에 혼자 들어가 몇 날을 보내고 돌아와야만 한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소년들이 성인이 되려면 양쪽 가슴팍을 쇠갈고리로 꿰어 나무에 매달린 채 온종일을 참아내야 했었다고 한다.
그 고통을 견뎌낸 사내 아이들만이 앞가슴에 독수리 발톱과 같은 흉터를 자랑하며 스스로가 성인임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그 성인임을 인정받는 시련이 있는 날, 어머니들은 곁에서 아이가 받을 그 쓰라린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며,
무사히 성인의식을 통과할 때까지 빌고 또 빌고 발을 구르며 애달파 하고 있지 않더냐.
이 세상의 어머니들이여, 어머니들이여...
너희들의 수능은 네 말대로 우리 사회의 성인의식과 같은 것이리라.
그러한 시련의 과정을 꿋꿋하게 1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을 버티어 견뎌내 온 너희들.
이 아버지는 너희들에게 먼저 감사와 격려와 축복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수능은 끝났다.
온 사회가 주시하며 긴장과 흥분의 가슴 졸이던 너희들의 성인의식은 일단 끝났다. 너희들의 마음은 후련하되 착잡하고, 시원한 듯하면서도 못내 속이 아플 것이다. 숨 막히던 긴장 속에 기량껏 시험을 못 치른 아쉬움에 무슨 마음이 편안하기만 하겠느냐.
알던 문제를 실수로 틀리고만 속상함에 눈물을 글썽이던 너를 보는 이 아비의 마음도 짠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쨌든 수능은 끝났다.
너희들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능시험의 의미가 단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점수에만 있겠느냐.
너희들이 그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수능시험은 성인이 되는 너희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쥐어지는 솔로몬의 지혜의 상자 같은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선, 너희들이 수능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외우고 풀던 그 많은 과목의 지식은 점수를 떠나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갈 인생의 소중한 보배로서, 때로는 판단과 분석의 예리한 이성의 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태와 감정의 방종을 막아내 주는 방패가 되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삶의 풍요로움을 살찌우는 교양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장담컨대, 아버지가 여태껏 살면서 응용했던 다양한 지식은 일부의 전공분야를 제외하고는 바로 고3 때 입시공부를 하면서 얻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인간을 지덕체(智德體)로 상징되는 두뇌와 가슴과 근육의 인간으로 분류해 볼 때 고3때의 그 엄청난 공부는 바로 두뇌의 인간을 성장시키는 훈련이었다.
이성의 주인으로서 인간은 두뇌의 예속자이기도 해서, 두뇌의 용량은 바로 이성의 역량이 되는 것이다.
수능을 통해 비단 이러한 지식이나 이성의 성장뿐이겠느냐. 그동안 너희들이 공부하느라고 감내했던 자기 절제, 인내, 갈등, 세상 모순에 대한 인식들은 너희들을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세계가 부쩍 큰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너희들의 고3 수능은 총알개미나 정글보다 더 혹독하고 가혹하면서도 세련된 성인을 향한 종합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능의 결과보다도 수능을 치르기 위해 너희들이 겪었던 고뇌와 수양 그리고 그 긴 기간 동안 침잠해온 방대한 지식이야말로 점수와 관계없이 너무도 가치 있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개미에 물린 아이들이 그 개미의 독이 백신이 되어 훗날 잔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지혜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혹여 수능의 결과만에 너무 집착함으로써 점수로 나타나지 않는 너희들의 성장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아라.
이제 수능이 끝났으니 좀 쉬렴.
머리를 쉬면서 가슴의 인간, 근육의 인간으로 스스로를 다시 보강해 보렴. 못 보았던 책과 영화도 실컷 보고 헬스클럽이나 새벽의 도로 위도 뛰어 유약해진 육체를 단단하게 만들어 보거라.
시험 결과는 저 책가방 속에 깊숙이 묻어두고, 하고 싶고 보고 싶었던 무엇이든 도전해 보아라. 용돈도 좀 필요하겠지!
내일은 엄마와 함께 좋은 옷도 한 벌 사거라.
다만 한 가지 술, 담배는 안 된다.
성인의식이 끝났다고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졸업식 때까지는 안 된다.
정글을 다녀온 자랑스럽고 대견한 너희 수험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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